.. “노인장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. 여기가 어디인지요?”
노인은 똑바로 달마를 쳐다보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.
달마는 눈에 웃음을 머금고 노인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.
노인의 얼굴엔 잔주름이 깊이 패어 있었다.
입은 옷은 남루했지만 스님의 행색이었다.
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맨발을 하고 있었다.
노인의 얼굴엔 놀라움과 의심하는 기색이 확연했다.
달마는 노인의 그런 태도가 당연하다고 여겼다.
게다가 자기가 한 말조차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.
달마는 손을 들어 가슴에 얹은 다음 손가락으로 ‘하늘(天)’을 가리키고 ‘바다’(海)를 가리켰다.
이어서 땅(地)을 가리키고 양(羊)을 가리켰다.
‘노행과수복봉양(路行跨水復逢羊)’이라는 게송을 떠올린 달마는 이 곳이 그 인연의 곳이 아닌가 싶었다.
그래서 자기의 신분이 승려이며 천축에서 바다를 건너 이 곳에 왔고 양을 키우는 노인장을 만나 반갑다는
뜻을 열심히 몸놀림으로 전달하려 한 것이다.
그러나 노인은 그의 손짓 발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같지 않았다.
다만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손으로 양 떼를 가리키는 것에서 노인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.
노인은 그가 탁발을 하기 위해 양성(羊城)이라고 불리는 광주(廣州)로 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 듯싶었다.
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달마를 자기가 앉아 있는 바위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.
달마가 옆에 앉자 종려나무 잎사귀로 싼 것을 건네 주었다.
달마는 의아하게 여기며 종려나무 잎사귀를 벗겨 보았다.
그 순간 맑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.
그 속엔 참깨까지 뿌려져 있는 주먹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.
노 인은 음식을 가리키면서 연신 그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.
‘어서 드시오. 비록 맛은 없는 것이지만 어서 드시오’
하는 뜻인 것 같았다.
달마는 곡기를 입에 대 본지 오래였다.
사양하지 않고 주먹밥을 먹기 시작했다.
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 속에 가득 찼다.
달마가 주먹밥을 다 먹기를 기다린 노인은 천천히 일어섰다.
채찍으로 땅을 가리키고 양 떼를 가리키고는 남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그 곳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다.
달마는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새 알아차렸다.
심지어는 노인의 몸놀림에서 해가 서쪽으로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까지도 읽어 냈다.
달마는 노인에게 정중한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.
주먹밥을 준 데 대해서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.
그리고는 노인이 가리켜 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.
과연 석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질 무렵 달마는 광주에 도착했다.
광주는 ‘수(穗)’라고 불리기도 하고 ‘양성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.
옛 전설에 따르면 다섯 명의 신선이 벼 이삭을 들고 오색빛의 양을 타고 이 곳에 나타나 풍요로운 고장을 만들었다고 한다.
또 다른 고사(故事)에 따르면 전국시대 초(楚)나라에 속했던 이 곳은 당시의 재상 고고(高固)의 고향으로
다섯 마리 양이 벼 이삭을 물고 고고의 집 정원에 들어왔다고 한다.
이 것을 길조(吉兆)로 여긴 고고는 임금에게 아뢰어 이 곳 지명을 양성으로 명명(命名)했다고 한다.
그 뒤 이런 전설과 고사를 기리기 위해 광주의 주 청사 안엔 다섯 명의 신선과 다섯 마리의 양 그림이 벽화로 그려졌다.
이로 말미암아 이 곳의 이름은 ‘수’ 또는 ‘양성’으로 널리 퍼지게 됐다는 이야기다. |